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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이야기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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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가가린은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선 계획인 보스토크 계획에 발탁되어

1961 4 12일에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유인 우주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으며,

이 업적으로 20세기 가장 유명한 소련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개인 차원을 넘어 냉전 당시 소련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데 적극 활용되었고,

미국이 이를 만회하기 위한 유인 달탐사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리 가가린 첫 우주인이 되다

가가린은 1934 3 9일 소련의 크루시노(현재 스몰렌스크주 가가린스키 군 크루시노)에서

3 1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1955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57년 졸업하며 공군 중위로 임관합니다.

1959년 비행시간 256시간을 달성하고 상위로 진급하고 3급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19603,000여 명의 공군 파일럿 중 19명의 우주비행사 후보생으로 선발된 가가린은

비행 실력, 신체적 조건, 집중력, 그리고 인품까지도 이들 중 최상위권이었고,

게르만 티토프와 함께 최종후보로 선발되었습니다.

티토프는 가가린에 이어 2번째로 우주비행을 하였습니다.

 

 

유리 가가린 소련의 영웅

인간의 첫 우주공간 진출이라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업적을 세우고,

 1시간 30분 간 우주 공간에서 머물다 지구로 돌아온

가가린은 소련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자신들의 체제우월성 및 우주기술의 과시를 위해서 가가린을

전 세계에 보내 연설회 및 기자회견, 팬사인회 등을 열었습니다.

가가린은 30여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냉전이 한창이었으나,

가가린은 공산권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프랑스와 같은 서방국가에서도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유리 가가린에 대한 헌사

이러한 명성 때문에 가가린은 소련정부에 의해 우주 비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후 1968327일 정지되었던 전투조종사 자격을 회복하기 위해 훈련기에 탑승해

훈련비행을 하다 추락사고로 34세에 사망하였습니다.

추락사고 원인이 불분명하였기에 많은 음모론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1969 미국 우주 프로그램의 아폴로 11 임무 동안, 우주비행사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표면에 가가린과 코마로프를 기념하는 메달이 담긴 기념 책가방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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