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이야기

패션의 아이콘과 혁신의 선구자, 코코 샤넬

수포자 아빠 2024. 1. 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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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코코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남서부의 오벨뉴 지방의 소뮈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12세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 버려져 보육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현대 여성복에 큰 영향을 끼치며 독립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삶을 살아간 여인이 되었습니다.

 

샤넬의 전통 복장에 대한 고민

 

샤넬은 당시 여성의 불편한 복장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은 샤넬을 

자연스럽게 패션계로 발을 딛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처음 시작한 일은 모자 전문점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1909년 마르젤브 거리 160번지에 모자가게를 연 샤넬을 이듬해인 

1910년 파리의 캉봉거리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전문점을 개업하였습니다.

 

코코 샤넬

파리 패션계로의 진출

 

독특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은 샤넬은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메종 샤넬’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 세계에 진출하였고, 1916년에는 컬렉션을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허리를 조이지 않는 반코트를 포함하여 수도복처럼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엔 속옷에만 사용되던 값싼 저지를 이용하여 드레스를 만들고,

길이도 과감하게 줄여 발목 위까지 드러나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세계 1차 대전은 샤넬이 유럽에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피난 온 유럽 각국의 귀족들에게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사업의 성장, 샤넬 넘버 5

 

당시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많아졌는데,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던 샤넬의 옷이 각광을 받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921년 캉봉가 27, 29, 31번지 전체를 자신의 매장으로 채운 샤넬은 조향사 에른스트 보와 

함께 그녀의 첫 향수 <No.5>와 <No.22>를 출시합니다. 
샤넬 디자인의 정점은 1926년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장례식장에 갈 때 검정 의상을 착용하였는데 샤넬은 그런 블랙 컬러를 드레스에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미니멀한 이 드레스는 몸의 실루엣을 자연스럽게 타고 흘러 활동이 

편리하면서도 우아함을 동시에 지녀 오늘날 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패션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며 1934년에는 액세서리 공장도 문을 열게 됩니다. 

4천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노동인권 등의 문제로 파업을 

겪으며 잠시 패션계를 떠나기도 합니다.

 

 

코코 샤넬에 대한 다른 평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를 지지한 사실이 밝혀져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나치 고위층과 친분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땅에 묻히지 못하고 스위스 로잔에 매장되었습니다.


나치의 스파이, 복잡한 사생활, 인맥을 이용한 사업 성공, 노동자들의 처우와 인권에 대한 무관심 등 

샤넬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아 현대 여성의 모습, 

행동, 옷 입는 방식 등을 제시하며 현대적 패션의식을 만들어 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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