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루즈베리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다윈이 8세 때 일찍 돌아가셨지만, 누나인 캐롤라인 등 3명의 누이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다윈을 길렀습니다.
찰스 다윈의 유년시절
다윈은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쓴 책들을 읽으면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다윈은 의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청소년기 때부터 곤충 채집과 동물 관찰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16세 때인 1825년에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우기 위해 입학을 하였지만,
1827년까지만 공부를 하다 자퇴를 하였습니다.
1827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공회 신부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인의 흥미에 따라 식물학자 헨슬로와 지질학자 아담 세지윅 교수의 지도를 받았으며
1831년에 졸업을 하였습니다.
역사적인 비글호 탐험
그 뒤 영국 해군의 탐험선 비글호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게 되는데,
이때 아버지 로버트의 반대가 극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딘버러 대학 재학시절의 은사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의 간곡한 설득으로
아버지 로버트는 아들의 세계일주를 허락하였고,
훗날 다윈의 생애는 물론 생물학계에도 족적을 남기게 되는 비글호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윈은 관찰한 것, 이론적 고찰을 꼼꼼히 기록했고, 5 년간의 탐험에서 무사히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탐험하며 기록한 것들을 전보를 통해 영국에 지속적으로 보내왔기 때문인데,
지질학, 광물학, 생물학에 걸친 자세하고 다양한 새로운 지식에 사람들은 어느새
다윈이 보내오는 다음 전보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세계 일주 탐험 이후에는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는데 힘을 쏟으며
1837년 다윈은 이른바 ‘적색 메모장’ (Red Notebook)에 최초로 종의 변화에 관한 착상을 기록하였습니다.
종의 기원 발표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자연선택'을 수립하게 됩니다.
진화론에 대하여 영국은 물론 전유럽에서 찬반이 오고 갔습니다.
다윈의 발표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 신학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약 10년 동안 확고한 기반을 닦게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차츰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다윈은 사망할 때까지 동물학·식물학 및 인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여담으로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할 당시 갈라파고스땅거북 세 마리를 영국으로 가져왔었는데,
이 거북이 중 한 마리인 '헤리엇'은 무려 2006년까지, 175년 동안 생존해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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